So many 지식을 얻은 날
세상에 대해 무지한 나는, 다소 어렵거나 생소한 문제를 듣는 건 좋아하지만, 그 문제를 깊게 파고들어 이야기하진 못한다. 왜냐하면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데, 나는 아는 게 없고,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것도 아니라서 문제의 요점을 잘 잡아내지 못하거나, 논점을 흐리는 일이 다반사다. 흐름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안 하거나), 공부를 (해도) 하고 나면 정작 응용하지 못한다. 뒤돌아서면 까먹거나, 아는 것을 실생활에 적용하지 못한다.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그런 내가 사회문제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한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28년간 무지랭이로 살아왔는데, 책 한 권 읽었다고, 혹은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눴다고 하루아침에 똑똑해질 리가 있겠는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답답하다. 그런 나를 바꾸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이라도 짜고 실행하려고 노력해야 할 텐데, 그게 참 쉽지 않다. 계속 머리를 굴려야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뾰족한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나한테는 없는 것 같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글도 제멋대로 쓰고, 생각이나 의견도 오락가락한다. 그런 주제에 무슨 사회문제를 알아가보겠다고 덤볐는지..
하지만 아니다. 그래도 한 걸음 뗀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는 어려움이나 두려움 때문에 다시는 사회문제에 발을 들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무지가 악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늘은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라는 책으로 독서 모임을 하고 왔다. 이야기하면서 든 생각은, 하나의 문제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 문제와 얽혀 있다는 점이었다. 그 지점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성차별 문제였다. 그 문제를 통해 페미니즘, 그리고 페미니스트에 대한 나의 시선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아직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이미 편향적이고 불합리한 사회에서 어느 한쪽으로 강하게 의견을 내는 단체가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고, 그 단체의 행동이나 단체 그 자체가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얼떨결에 정희진 선생님의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독서 모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 함께하게 됐는데, 와... 정말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몰랐던 사회문제가 이렇게 심각했구나, 세상은 참 다양한 문제로 얽혀 있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무지하게 살아가는 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무섭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왠지 주변에서 배제당할 것 같고, 특히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방인처럼 느껴질까 두렵다. 게다가 페미니즘이 급진적인 학문이라고 여겨지며 마녀사냥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독서 모임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지만, 나는 아직 그들만큼 용기가 없다. 나는 너무 치사한 사람 같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런 회의감에 휩싸여 좌절만 하고 싶지는 않다. 정말 미세한 걸음이라도 좋으니, 내가 설 수 있는 자리에서 조금씩이라도 발을 들여 목소리를 내보는 시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작은 시도라도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