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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용감함

씩씩하다, 용기 있다, 용감하다. 이런 말들은 나와 거리가 멀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근데 가끔, 별다른 기세 없이도 불쑥 용감한 결정을 내릴 때가 있다.

정말 가고 싶은 모임이 생겼을 때. 애타게 찾던 물건을 발견했을 때. (물론 가격을 보면 고민이 시작되지만.) 아니면,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나는 그 순간, 머뭇거리다가도 갑자기 ‘아 몰라!’ 하고 지갑을 열고, 손을 들고,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낸 결정의 만족도는… 한 65% 정도? 어쩌면 더 될지도 모른다. 근데 반대로, 깊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은 결과가 좋아도 묘하게 공허했다. 왜 그럴까.

용기를 내기까지 너무 오래 끌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렵게 낸 결정에 대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혹은, 원하는 답을 듣고 잠깐 만족했지만 그 뒤에 밀려오는 또 다른 두려움 때문일까?

나는 용기를 내기 전에 꼭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나 이거 해도 될까?’ 그런데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친구들도 나도 다 알고 있다. 결국엔 내가 할 거라는 걸. 그런데도 묻는다. 그냥, 누군가가 ‘해도 돼, 해봐!’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서. 그리고 그 말을 들으면 순간적으로 힘이 난다. ‘그래, 나도 용기 있는 사람이다!’ 하고 착각하는 게 귀엽기도 하다.

그러고 나면 하루 종일 그 일만 생각한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계속 떠오른다. 머릿속에서 백 번쯤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자꾸만 상상한다. 그러다가 결국, 또 진이 빠진다.

그리고 가끔 후회한다. 왜 이렇게까지 고민했을까. 결국에는 남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쓴 탓이다. 그냥 바로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그러니까 너무 오래 고민하지 말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 말자. 조금 덜 망설여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충동적이어도 괜찮다. 어차피 그 순간의 용기가, 나를 예상하지 못한 멋진 방향으로 데려다줄지도 모르니까.

#일기